공지사항

일본도 에 관해서 2023-08-29 17:40:43
admin 조회수 : 325
첨부파일 : 대마도_정벌_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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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과 우리의 관계



일본이 우리의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친했고



그들이 한반도를 침략 한적이 많지 않았다



그때는 우리가 발전된 국가 이고



그사람들에게



학문이나 기술 종교를 전해서 우리가 도움을 주는 나라 였고



고려때나 되서 일본의 도둑때 무리가 한반도를 침략해서



노략질 해가서 이를 막기 위해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고



작은 전투를 벌인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이때 등장하는것이 일본도 이다.



왜구는 일본 해적으로 생계가 어려워지자 바다 건너 우리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노략질을 일삼았다.



왜구에 대해 옛 고서들은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남겼다.





‘해상에는 해적이 많아지고… 이 무리는 수천 척의 배를 갖추고 원과 고려 각지에 밀어닥쳐서… 원과 고려의 이민(吏民)들이 이를 막아내기 어려워 포구 가까이에 있는 수십 곳의 마을이 모두 사는 사람도 없이 황폐해져 버렸다.’



 



-태평기(太平記)-









왜구의 규모는 단순한 해적의 수준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1380년 8월 진포에는 500여 척의 왜선이 나타났다.





최무선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이 이끄는 고려 수군이 함포 사격을 가해 이를 격퇴시켰지만,



왜구들은 상륙하여 도주하며 온갖 노략질과 살상을 자행하였다.





비록 황산에서 이성계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가 이끄는 고려군이 잔당들을 소탕하긴 하였으나



왜구의 존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큰 우환거리였다.





한반도의 새정부 조선은



조선은 왜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웠다.



장군 이종무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가 227척의 병선과 1만 7천의 군대를 이끌고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를 정벌 한 것이다. 원정군은 대마도를 기습하여 왜구 114명을 참수하고 배 129척을 불태우는 전과를 올리고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았다.



왜구란 글자 그대로 풀면



'왜(倭)가 도적질한다(寇)' 혹은 '왜 도적'이라는 의미이다.



사료에서는 왜인들의 해적 행위를 뜻하는 명사로 사용되곤 하였다. 이러한 왜구로 인한 우리나라의 피해는 삼국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국가 고려가 멸망하기까지 왜구의 침략은 큰 역할을 했다. 몽골과 원나라에 시달린 고려는 말기 40여 년간 왜구에게 무려 591회에 달하는 침략을 받았고 결국 멸망했다. 왜구의 침략은 이후 조선 시대에도 이어지다 ‘임진왜란’이란 정규군의 공격으로 대체됐다.





왜구를 약탈과 살인을 일삼은 ‘일본 해적 집단’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왜구는 고려의 멸망에 큰 역할을 했다.





왜구는 수많은 백성들의 생존과 생활을 탈취했다. 둘째, 해안가 주민들에게 수백년간 피해를 끼쳤을 뿐 아니라 ‘약탈’이란 불안 속에서 살게 했다. 셋째, 고려가 공도정책을 추진하고, 조선이 쇄국 정책과 해양천시 정책 등을 실시하는 명분과 계기를 제공했다. 넷째, 우리민족은 항상 피해자였다는 패배감을 느끼게 했고, ‘한(恨)’이라는 자기 위안에 빠지도록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구의 정체를 정치적이고 군사적이며, 문화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도가 발전된 이유



왜구는 보통때는 무역 하는 장사꾼이기도 하고 어떤때는 일본도를 휘두르고



살생을하는 해적의 무리로 발전한다.



무리의 규모도 아주 크져서 우리가 상상하는 일반 해적의 수준을 넘어서



군대로 발전하여 고려군과 전투를 벌인 기록이 많이 있다.



고려나 중국의 기록을 보면 일본도 굉장히 성능과 품질이 좋았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은 전국시대에 특히 많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일본도가



필요했고 이대 많이 발전 하였다.



위 책에서 보면 알지만 일본의 많은 지역에서 대대 이어서 일본도를 만들어 왔어니



당연히 고도의 기술과 품질과 미술적 가치가 있는 도검이 나올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본의 역사가 단시간이라도 전쟁이 없어서 도검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은 없었든 것 같다.



지속적인 수요와 공급이 많은 도공이 생기게 하고



서로 경쟁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도 되고



또한 도공의 대우나 경제 수준 사회적 지위도



고려 나 조선 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았어니



일본도 도검이 발전할수 밖에 없었다.



다음 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