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 및 검도관련 정보

일본칼 공부(퍼온글) 2008-11-06 00:00:00
admin 조회수 : 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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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칼소개


다치





 




비슈 오사후네 스케사다에 의해 주조된 "타치". 이쇼 12년(1515년) 2월 어느 날에 주조되었다. 칼집이 "아오가이-나시지"에 황금 장식이 되어 들어가 있다. 1907년 장식됨, 1987년 마지막으로 정리됨.



 


 

마츠사다 츠구야스에 의해 1997년 주조된 "타치". "코시래" 형식으로 1999년 타케야마에 의해 장식되었다. 헤이안 시대(11세기)의 기병도를 본따 만들었다.


타치(太刀)는 가타나보다 약간 더 길고 더 휜 검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일부 서적이나 사료에 따르면 같은 검을 "칼날이 위로 향하게" 매면 가타나가 되고 "칼날이 아래로 향하게" 매면 타치가 된다고 부르기도 한다. 타치는 결국 가타나에 밀려 인기를 잃었다. 가타나 이전의 장검들은 평균적으로 78cm 정도의 칼날 길이를 가졌다. 가타나는 평균적으로 70cm 정도의 칼날 길이를 가진다. 가타나와 다르게 타치는 허리띠에서부터 "칼날이 아래를 향하게" 매었고, 주로 기병에 의해 사용되었다. 코다치 오다치는 타치의 변형판이다. 타치가 와키자시보다는 길지만 쇼토 크기로 축소되면 코다치라고 불렀고, 본래 길이보다 더 길어지면 오다치라고 불렀다. 현존하는 가장 긴 오다치는 1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총 길이 3.7m(칼날 길이 2.2m)의 검이다. 하지만 이 검은 의식용으로 보인다. 1600년대에, 많은 오다치들이 가타나 크기로 잘려졌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타치는 복원되거나 다시 만들어진 것이며, 진품 타치는 희귀하다.



 사용


타치는 주로 기병들이 사용했는데, 타치의 형태와 절삭력은 말 위에서 보병들을 베기에 적합했다. 근접전에서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말 위에서 사용할 때보다 어색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가타나의 선조인 우치가타나가 개발되었다.


타치는 가타나가 등장하기 전까지 봉건 무사 계급의 주무장이었다. 나중에는 두 가지 형태로 분화되었는데, 그 두 가지는 칼을 어떻게 차고 다니는가와 칼날의 형태로 구분되었다. 일본 봉건 말기(센고쿠와 에도)에 유명한 전사들은 대부분 칼날이 아래로 향하게 차는 타치 스타일을 애용했다.







 




19세기 에도 시대, 와키자시 스타일의 검

19세기 에도 시대, 와키자시 스타일의 검

와키자시는 30-60cm 사이의 칼날을 가진 전형적인 쇼토이다. 일반적으로 50cm 정도의 칼날을 가졌다. 코다치보다는 조금 길고 카타나 보다는 짧다. 사무라이들은 주로 와키자시를 가타나와 함께 차고 다녔다. 길고 짧은 검이 한 쌍을 이뤘을 경우 다이쇼라고 불렀다. 가타나는 "검" 혹은 "장검"이라고 불렸고 와키자시는 "동료 검"이라고 불렸다.


와키자시는 카타나보다 다양한 주크리 스타일과 크기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카타나보다 얇고 굴곡이 없었기 때문에 훨씬 더 공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가끔 츠바가 없는 와키자시도 있었다.


와키자시는 카타나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건물에 들어갔을 경우, 사무라이는 자신의 검을 뒤따르는 하인 혹은 시종에게 건네 주었다. 하인은 검을 받아 칼자루가 왼쪽을 향하도록, 그래서 칼을 오른손으로 쉽게 뽑지 못하도록 카타나-카케라는 진열대에 걸어 놓었다. 이 것은 사무라이의 오른편에 위치했기 때문에 사무라이는 자신의 검을 쉽게 뽑을 수 없었다. 이 절차를 밟지 않으면 주인에게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와키자시는 언제 어디서나 차고 다니는 것이 허용되었다. 마치 현대인의 권총과 같은 존재였다. 어떤 사무라이는 베개밑에 와키자시를 넣어 밤중의 야습에 대비하기도 했다. 전국시대 초기에는 탄토를 와키자시 대신 차고 다니기도 했다. 특별히 강한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무사들은 왼손에 와키자시, 오른손에 카타나를 들고 이도류를 행하기도 했다. 이것은 공격력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와키자시는 할복에 주로 사용되지 않았다. 할복은 탄토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