寅年·寅月·寅日·寅時에 제작된 검이 사인검이고, 용띠 해인 辰年에 제작된 검이 진검이다.
중종실록에 의하면 중종 37년(a.d. 1543) 사헌부가 "사인검은 전례에 따 라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만드는 것인데,
흉년을 당하여 만드는 것은 무익한 것이니 중지할 것을 건의했다 는 기사가 있다.
이 기사로 미루어 보아 인검은 조선왕조 초창기부터 전투용이 아닌 사액을 막기 위한 부적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날 기사에 "해마다 주조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년에 만드는 것인데, 이 는 조종조의 예부터 있어 온 일이며,
금년은 인년에 해당하는 해이기 때문에 주조하 는 것이다. 라고 했다.
인년은 간지가 범띠 해로서 갑인년·병인년 등이 해당되고, 인월은 음력 정월, 인일은 일진의 간지가 인으로 된 날이며,
인시는 오전 3시부터 5 시까지의 사이 시간이다.
불교에서는 예불을 드리는 시간이며, 새벽의 밤 기운이 물 러가고 밝음이 오는 시간에 첫물을 붓는다.
연·월·일·시가 다 인으로 충족되면 사 인검이요 하나가 빠지면 삼인검이다.
기록에 의하면 진검이 있어 조선시대에는 양 반가에 寅劍과 辰劍을 家寶로 두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종실록의 성종 9년 3월 계유조에 昌原君 展의 古邑之라는 여인 살인사건에 대 하여 창원군이 말하길
"신은 본래 고읍지라는 여인을 알지 못하며 전후에도 여인을 살해한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 다만 삼인검과 삼진검이 각각 한 자루씩이 있을 뿐이 고 환도는 없습니다." 하자,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창원군 성의 종 원만이 주인이 시키는 명령에 따라 환도로 고읍지를 죽였습니다." 이라 하여
인검과 진검은 무기 가 아니며 환도는 무기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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